토라포션 말씀카드

금주의 토라포션(05/15~05/21) '베하르'(산에서) / 샤밧(안식),슈미타(안식년)의 묵상

HIS Blessing 2022. 5. 14. 20:33

안식 / 안식일 - 샤밧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6일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7일째 되는 날에 쉬셨던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도 7일째는 안식을 할 것을 다른 9가지의 계명과 함께 명하셨다. 안식(샤밧)은 유대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날이되었다. 출애굽기 20장 8절부터 1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8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9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안식 곧 샤밧은 한 주간의 일곱째 되는 날 뿐만아니라, 일곱째 달도 구별하여 지켰다. 이 샤밧과 관련한 것이 바로 거룩한 모임 즉 '성회'이다. 그 어떠한 노동도 중단하고 '거룩한 모임'을 가지며, 창조의 주 하나님, 야훼를 기억하게 하셨다.

 

7년째 되는 해를 '안식년', 곧 '슈미타'라고 부르며, 일년 전체를 '땅을 쉬게' 하였다. '슈미타'의 뜻은 '버려두다', '중단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유대인들은 일년내내 농사를 하지 않고 땅을 쉬게한다. 그래서 안식년(슈미타의 해)에는 농사를 짓거나 나무를 심는 일 혹은 다른 것을 경작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 땅에 자연적으로 열매를 맺는 농산물이나 소산물은 어떻게 하는가? 그럴경우 사람이나 동물이나 그 소산물을 아무나 취할 수 있다. 주인은 그 소산물을 위해서 한 것이 없기 때문에, 그 땅에서 자연적으로 생산된 모든 소산물은 그 땅의 주인에게 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원하는 사람이면 아무나 와서 거저 그 소산물을 취할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 땅의 주인은 안식년동안 그 땅에서 생산된 소산물을 취하여 팔거나 그 땅에 접근하는 권리가 제한받는다는 사실이다. 

 

또 흥미로운 사실이 있는데, 안식년(슈미타)에는 돈을 빌려준 자는 채무자에게 돈을 갚으라고 요구하지 않아야 하고 그 빚을 탕감시켜주어야 한다(신15:1~4)

 

슈미타를 지키면 유대인들은 어떻게 그들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까? 안식년(슈미타)을 지키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은 안식년 이전의 해에 풍성한 추수를 하게 하여서, 자신의 힘으로 일하여 먹을 것을 얻지 못하는 삼년동안 먹기에 충분한 식량을 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년(슈미타)를 지키는 것은 그들 스스로 자신의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시험하는 것이었다. 그들 스스로 씨앗을 뿌리고 토지를 경작하여 얻은 소산물이 아니어도 그들이 굶어죽지 않고 노동을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평강 가운데 살아갈 것에대한 믿음의 확신이 요구되기 때문이었다.

 

역대하 36장 20절에서 21절을 보면 슬프게도 우리 모두가 범할 수 있는 잘못을 범한 사실이 나온다. 유대백성이 490년이라는 긴 기간동안, 이 슈미타의 법(안식년의 법)을 지키지 않아서 하나님은 7년째 지켜야 할 안식년을 일년으로 계산하여 무려 70년이라는 기간을 페르시아의 포로로 사로잡혀가서 살아가는 모습이 나타난다. B.C.606년에 페르시아의 왕 느부갓네살에게 포위 당하기 전 490년 동안 그들은 슈미타를 잊어버리고 살아왔던 삶의 열매로 이러한 슬픈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던 것이다.

 

"20그는 또 칼에 맞아 죽지 않고 살아 남은 자들은, 바빌로니아로 데리고 가서, 왕과 왕자들의 노예로 삼았다. 그들은 페르시아 제국이 일어서기까지 거기서 노예 생활을 하였다. 21그리하여 주님께서 예레미야를 시켜서 “땅이 칠십 년 동안 황폐하게 되어, 그 동안 누리지 못한 안식을 다 누리게 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대하36:20~21)

 

샤밧(안식일)과 슈미트(안식년)는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 존재의 본연의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는, 이러한 영적 안전장치의 역할을 하는 것 아닐까? 샤밧과 슈미트는 항상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의 삶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살아가야 하는지 각성하는데 도움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시간으로 우리의 육체는 쉼을 얻으며, 영혼은 거룩한 성소에서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으로 다시 소생하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은 반복적이고 규칙적이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지만, 먹고 마심으로 유지될 수 있는 유한한 우리 존재가, 오히려 우리의 수고와 노력이 들어가지 않는 상태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임재와 현존을 경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의 삶에서도 이러한 은혜가 넘치는 한 주, 또 한 주간이 되기를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