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포션 말씀카드

성경에 나타난 히브리어 숫자 "7"과 그 의미

HIS Blessing 2022. 5. 22. 08:33

성경에서 "7"이라는 숫자는 매우 자주 등장하는 수(Number) 이기도 합니다. 

 

'토라포션(브래드북)'에서 언급한 몇가지 예를 제시해보자면...

 

1.  토라는 일곱 단어로 시작합니다. "베레쉬트 바라 엘로힘 에트 하샤마임 베에트 하아레츠" 즉 창세기 1장 1절의 말씀입니다.

2. 하나님은 창조를 시작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샤밧)하셨다

3. 하나님은 한 주 동안(칠일)에 안식을 위한 하루로 안식(샤밧)을 명하셨다

4. 쉬밭 하미님이라고 하는 축복된 땅에서 나는 일곱가지 소산물이 있다. 밀, 보리, 포도, 무화과, 석류, 올리브, 그리고 꿀(이 본문에서 꿀은 대추야자의 열매를 말한다) 등이 있다(신8:8)

5. 유대력에는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 나팔절, 대속죄일, 그리고 초막절 등의 일곱가지 절기가 있다(레23장)

6. 유대력의 일곱번째 달, 즉 티쉬리월은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7.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성전에 피를 일곱번 뿌린다.

8. 이스라엘에서 유월절과 초막절은 칠일동안 지켜진다

9. 매 7년 째에는 안식년(슈미타)으로 그 땅을 쉬게 한다

10. 안식년(슈미타)이 일곱번 지나면 요벨이라고 불리우는 희년을 가진다

11. 성전의 촛대(메노라)에는 일곱 가지가 있다.

12. 성전으로 들어가는 문이 일곱 개이다.

13. 유대 결혼식에는 축송문을 일곱번 낭송하며, 신부가 신랑을 후파(Wedding Canopy) 아래에서 일곱 번 돈다. 결혼식은 칠일동안 한다.

14. 유대 전통에 따르면 장례가 끝나는 날부터 쉐바라고 하는 칠일 동안의 애도 기간을 갖는데, 문자적으로는 7을 나타낸다.

15.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벽이 무너지기 전에 유대 백성으로 하여금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일곱번 돌도록 하였다

 

이 이외에도 너무 많은 일곱이라는 숫자가 나타납니다. 특별히 토라에서 히브리어로 숫자 '7'이라는 숫자는 가장 영적으로 중요한 숫자 중의 하나입니다. 

 

히브리어로 숫자 '7'은 위에 언금된 대로 '쉐바'(She'vah, שבע) 라고 합니다. 이 단어가 가지는 특징 중 하나는 영적으로 '복종과 순종'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쉐바'는 일곱의 여성형으로 단순하게 숫자인 기수로서 사용하기도 하지만, 상징적인 용법들에서는 신비한 암호말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예를들어 히브리어로 '맹세하다'라는 히브리어 단어 '샤바'도 '쉐바'(She'vah, שבע)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원래 히브리어 성경 원문에서는 모음 없이 자음으로만 씌여져 있기 때문에 '쉐바'나 '샤바'나 모두 동일하게 'שבע'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27거기서 아브라함은 양과 소를 아비멜렉에게 주었으며 그 두 사람은 계약을 맺었다.

28아브라함이 암양 새끼 일곱 마리를 따로 떼어 놓자

29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하고 물었다.

30그래서 아브라함이 “당신은 내가 이 우물을 팠다는 증거물로 이 일곱 마리의 암양 새끼를 받으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31두 사람이 거기서 맹세하였으므로 그 곳을 브엘세바라고 불렀다.

32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이 계약을 맺은 후에 아비멜렉과 그의 군사령관 비골은 블레셋 땅으로 돌아갔으며

33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위성류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였다.(창 21장 27절 ~ 33절)

 

그래서 창세기 21장에서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자신이 판 우물이 자신의 소유임을 맹세하라고 요구할 때 어린 양 일곱 마리를 아비멜렉에게 주어서 그 '맹세'를 확증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그 우물의 이름을 '브엘세바'라고 했다고 기록합니다. 즉 '일곱 우물' 혹은 '맹세의 우물'이라는 의미이죠. 이 우물의 이름에 바로 그들이 행한 행위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맹세는 서로간의 약속이라는 의미에서 언약이라는 뜻을 가진 '베리트'와 비슷합니다. '언약'은 계약의 본질 그 자체를 말하지만, '맹세'는 언약에대한 서약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한 언약(베리트)을 이행할 것에 대한 절대적 확실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맹세를 행하십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살펴본 이스라엘의 멸망과 안식일, 안식년, 희년은 모두 숫자 '7'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천지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창조시에 일곱번 째 날에 쉼을 가지시고, 우리에게도 일곱번 째 날을 안식일로 쉬게 하시고, 일곱번 째의 해인 안식년과 그것이 일곱번 돌아오는 해(49년째)와 그 다음해를 희년(50년째)으로 하여 쉬게 하신 것에 대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을 맺은 것 입니다. 여기에 숫자 '7'은 그 언약과 언약에 대한 맹세가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곧 안식일은 맹세의 날이며, 안식년은 맹세의 해 인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숫자 '7'은 심판의 의미도 동시에 포함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물리적인 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신성한 통로인 영/영혼(루아흐/네페쉬)에 단절을 만들어 버립니다. 이 단절이 발생하면 하나님의 자비가 심판으로 나타납니다. 심판없이는 우리 중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심판의 불로 정결하게 되고 깨끗해지지 않는 이상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가인을 죽이는 자에게 일곱배의 벌을 맹세하셨고, 안식년을 범한 이스라엘에게 70년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맹세하셨고, 다니엘에게 칠십 이레(70 weeks)의 환상을 통해서 종말에 대해서 맹세하셨고, 사도 요한을 통해서 일곱 인과 일곱 대접, 그리고 일곱 나팔 재앙을 맹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숫자 '7'은 신적 계시이며, 신성 그 자체이고 완전함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숫자 '7'에는 이 세상 안에 하나님 자신의 신성으로 심어놓으신 창조적 비밀을 담고 있습니다. '안식 과 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안에 거하는 모든 피조물들 역시 지켜야 할 생명의 원리이며 원칙입니다. 이 원칙을 깨뜨리면 결국 우리의 유한한 육체도 제대로 작동할 수 없고, 그 무엇보다 우리의 영이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의 자리에 있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단절된 채로 말할 수 없는 나의 욕심의 극한인 탐욕으로 치닫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한 탐욕은 결국에는 우리에게 생명의 법으로 주신 안식과 쉼을 무시하게 되고, 결국 창조적 질서를 다 망가뜨리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 자신에게만 아니라 이 피조세계인 만물 안에서도 그 고통과 심판의 결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오늘은 날씨가 5월인데도 33도를 기록한다고 합니다. 인도 델리에서는 공중을 날라가던 새가 너무 뜨거운 날씨에 지쳐서 땅으로 떨어졌다는 뉴스 기사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끊임없이 일하여 얻어도 만족함이 없어서 쉬임없이 일하는 인간들이 결국 땅도 쉬임없이 일하게 하므로, 이 탐욕으로 온 세상이 불 구덩이와 같은 세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불 심판이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나의 삶의 가까운 곳에 숫자 '7'을 써 놓고 하나님의 언약을 늘 기억하며,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는 영원한 불심판안에 들어갈 수 밖에 없음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자비하심 앞에 우리 자신을 늘 드리는 맹세와 헌신의 삶이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