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삶을 사는 자들을 향한 리처드 스틸 Richard Steele의 일침
리처드 스틸 Richard Steele의 '그리스도인의 경제윤리 The Religious Tradesman'의 한 줄 읽기 두번째 글이다.
이번에는 특별히 '게으름'과 여러가지 이유로 '게으른 삶'을 사는 자들을 향한 리처드 스틸의 강경한 태도를 소개한다. 종교개혁운동은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회복하는 운동과 함께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을 분리하는 이원론적인 사고와 삶에서 거하는 많은 이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려고 애썼다.
리차드 스틸도 아래의 몇가지 논거를 가지고 일에대한 잘못된 생각을 가진 자들을 향하여 일침을 가하고, 바른 성경적인 지침을 제공하고자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 일을 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와 본성이 요구하는 것이다
리차드 스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직업 활동의 의무는 자연의 이치와 본성에서 비롯된다. 양자가 서로 상관없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서로 유익을 주고 받지 않고 사는 삶은 극도로 불합리 하다. 스스로 일하여 자신을 돌보지도 않으면서 하늘에서 생계유지에 필요한 것들이 저절로 떨어지리라 기대하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행위이다. 그런것을 고집할 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지만, 사람들의 행동은 지혜롭지 못하다. 사람들은 직업활동을 함으로써 스스로를 돌보기 보다는 게으름을 피워도 하나님의 섭리가 다 알아서 해 줄 것처럼 행동한다. ...이러한 직업 활동은 인간에게 매우 자연스럽고 즐거운 것이다. 그러하기에 만일 나태를 정당하다고 인정하는 법률이 제정된다면, 틀림없이 많은 사람들이 기거이 벌금을 내고서라도 일할 자유를 얻으려고 할 것이다"
무척 공감되는 말이다.
기도와 말씀을 읽는 것이 일하는 것보다 더 영적이라고 생각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일하지 않고 기도하는 일을 택했으니, 하늘에서 나에게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다 내려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혹은 나는 훨씬 더 거룩하고 영적인 일을 하고 있으니, 열심히 세상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수고하여 번 소득으로 당연히 세상적인 일을 선택하지 않은 거룩하고 영적인 삶을 살고 있는 나를 돕는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실제로 어떤 영적 지도자들은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을 향하여, 일상 중의 대부분을 일하는데 시간을 드리고 있는 그들에게 세상 일에 매여있고, 영적이지 못하다는 은근한 정죄감을 심어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영적 지도자들은 세상적이고 세속적인 일이라고 정죄한 성도들의 수고로 얻은 재정을 경계하지 않고 거저 얻으려고 오히려 탐한다.
그래서 이러한 부류의 영적지도자들은 성도들이 수고하여 번 것을 천국 창고에 쌓아두라고 하거나,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그들이 수고하여 얻은 소득을 하나님께 드리므로 세상에서 일하고 있는 정죄감으로 부터 자유함을 받으라는 이상한 복음(?)을 전한다.
이러한 지도자들 중에는 결국 그 헌금으로 자기 자신의 사리 사욕을 채우거나, 자신이 필요한 것을 자신이 수고하여 그 필요를 채우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수고를 대신 빼앗아 채우려고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세상의 일이라고 경시하는 그들은 성도들이 십일조와 그 이상의 재정을 드리도록 말씀을 사용하여 그들의 심령을 조정하고 혹은 무리한 빚을 져서라도 교회건축이나 특별한 목적에 헌금을 하도록 동기 부여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 재정을 드리기 위해서 그들의 표현으로 '영혼을 갈아넣거나', 자신의 건강과 삶이 망가지도록 애써서 헌금을 하게 되는 성도의 삶에는 무관심하고, 오로지 얼마나 재정이 들어왔는지에대한 관심만 가지는, 쓸모없는 이런 영적 지도자들은 실상은 돈을 사랑하는 도둑이요 강도와 같은 자들이다.
고린도후서 2장 17절의 말씀을 보면 바울의 시대에도 이러한 영적 지도자들이 있었던 것 같다
개역성경 번역이 원래 본래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준다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자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이 말씀을 NASB 본문을 가지고 번역한 새번역이나, 기타 번역이 조금 더 분명한 이해를 가지게 도와준다.
"우리는
저 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서
먹고 살아가는 장사꾼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꾼답게
진실한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는 앞에서
그리스도안에서 말하는 것입니다"(고후2:17 새번역)
2. 일을 해야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이며 또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기 때문이다.
리차드 스틸은 계속 이렇게 말한다. "직업 활동은 하나님의 명령이자 계획이다. 아담에게는 타락하기 전에나 후에나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창2:15)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지혜로우신 하나님은 타락하기 전의 아담에게 소명을 주셨따. 고귀한 혈통과 막대한 재산, 작은 가정, 명상(묵상)에 적합한 정신이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될 수 있다면, 아담만큼 자격있는 사람도 없을텐데 말이다
타락한 후에 아담은 더욱 많은 노동을 하면서도 더 적은 유익을 얻는 상태에 처하였다. 하나님은 그에게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창3:19)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은 아담의 모든 후손에게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20:9,10)라고 명령하셨다. ... 엿새 동안 일해야 하는 의무는 일곱째 날에 안식해야 하는 의무와 똑같은 권위를 지니는 하나님의 명령인 것이다.
복음시대에도 그 명령은 달라지지 않았다. 성경은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살후3:12)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친히 노동의 모범을 보여주셨다는 사실은 이러한 명령에 더욱 더 무게를 실어준다"
리차드 스틸의 주장처럼, 매일 묵상만 하고서 살아도 될 아담이 일하였고, 또 그 아담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일하도록 하셨다면, 하물며 우리가 어떻게 일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예수님도 그의 인생의 대부분을 목수로 일하면서 사셨는데, 어째서 우리는 일하지 않는 경건한 삶의 방법을 지향하는 것일까? 교회 공동체에서 모여서도 왜 세상에서 일하는 것을 나누고 이야기 하는 것을 영적 지도자들은 정죄하는 것일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아담도 일하고, 예수도 일하셨으면, 우리도 그 말씀으로 어떻게 일하여야 하는지 나누고 일하는 태도와 방법을 교정해가는 것이 올바른 것이 아닐까?
왜 전도자와 목회자들은 세상 일하면서 복음을 전하지 않는가?
말씀을 읽고 가르치며 기도하는 일에 전무하기 때문에, 그것도 시간이 부족해서인가?
말씀을 읽고 가르치며 기도하는 일에 전무하는 이들을 보면 존경이 가고, 또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고자 하는 마음이 저절로 든다. 이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 일이 그 어떤 일보다도 가치있는 일이기도 하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올바로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도록 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에 그러지 않음에도 그들이 가진 목사 혹은 전도자라는 신분 때문에 일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땀흘린 수고의 재물로 나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 정당하다고 여긴다면 이것은 신분이 만들어준 '게으름'의 속임속에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 자신도 일에대한 하나님의 뜻과 그에 반응하는 나의 태도를 돌아보고 싶다.
하나님의 말씀위에서 일하며, 복음을 전했던 청교도들의 삶을 더 닮고 싶다.